이쪽 회사로 와서
설 / 추석에는 거래처에서 선물세트를 보내준다.
항상 받아왔던 거라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며칠전만 해도 보였던 과일상자가 반차로 인해 빠진 날 이후로 안보인다면’
나는 이쪽 사람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의욕이 사라진다.

그리고, 애사심은 지하 맨틀로 처박힌다.
나중에 가면 체념하고, 그냥 내 돈으로 사고 말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기대했을 어머님께 역시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비참해진다.

이직 성공후기에 점점 눈이 가고, 포기했던 코딩에 다시 손이 가는걸 보고,
그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슬프게 느껴진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1억 / 5,000만원을 모으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이러면서 세상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구나, 이런 결론까지 낸다.
뭐, 나만 힘든건 아니지.
극복하면 전설이고, 영웅으로 불리겠지만, 오르지 못하니까 레어도가 높은거고.

분노가 몸에 쌓이고, 이게 화가 되면서 우울해 지게 될 것이다.
어느순간부터 한계를 넘으면 터지고, 죽겠지. 자살이든, 사회적 말살이든.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거나, 그저 순응하며 사는 수 밖에 없거나

기껏해야 사과 한 박스에 이딴 생각까지 진행된 이 상황이 너무나 싫다.

같은걸 적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적고싶다.

예전에는 비를 좋아했다. 중2감성을 넣자면, 죄가 씼겨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라는 이유로 좋아했고, 비 소리가 마음을 적셔주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누구 말 처럼 용왕님하고 뭔가 있어서 비를 좋아하는 것일수도 있겠지.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군대에서 흙탕물로 군화를 적시고, 바지 밑단도 젖어보고 몸에 비를 왕창 맞은 다음에야 눈 다음으로 싫은게 비로 바뀌었다.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할수 없다면 막아야지. 피하지 못한다고 비오는거 즐기면 나는 즐겁지만 주위에서 미친놈같이 바라보더라.

한때는 그런 로망도 있었다. 아이아이가사 를 생각하며 둘이서 우산 하나를 가지고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꿈에서, 창문을 보면서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큰 우산으로 반경 1m 는 비를 막고있다. 눈새로 활동하면서 얻은 나만의 고유결계. 경찰아저씨 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나는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를 먹어간다고 느낀다.
감성이 메말르고
사랑이 좁아지고
시야도 작아진다.
그리고 배려도 점점 작아지지
예전이라면 버스에서 어르신이 보이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수련을 했었지만
지금은 자리에 앉으면 바로 꿈나라로 도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좋은 기억은 없다. 아무것도 기억 못하니까.

시간이 나를 깎은걸까.

단상

그저, 세상이 그렇다.

코로나 탓인지 이 미쳐버린 세계탓인지, 분노를 억누르는 사람이 적다. 손쉽게 살인이 일어나고 성별은 서로싸우는것을 의무로 삼으며 인터넷은 사진보다 영상이, 그리고 편집이 더더욱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자극의 끝을 항해가는 열차를 보는것 같다. 더 야한것, 더 멋진것, 더 흥미로운것, 더 즐거운것. 이것들을 찾고있다. 것는것만 그럭저럭 잘하는 나도 이런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선이 무서우니까.

며칠간, 길을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버즈같이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 스마트폰을 잊지않는 사람들, 하루의 피로가 어깨에 묻어잇는 사람들…

딱 한명, 책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무슨 책이었더라… 교양, 문학은 아니었다. 경제서적이었다. 딱 두 명, 공부하는 학생을 보았다, 단어장을 만들어서 지나가며 보는 학생을 보았다. 딱 세 명, 오늘의 일을 끝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보았다. 세 분 모두 잘 살아남으시길 기원했다.

어느덧, 정류장이 다가온다.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는 이 세계에서 떠난 사람도 있었다. 부디 그들에게 조그마한 축복을.